5. 인디언과의 갈등
당시의 Washington Territoy는 현재의 워싱턴주와 북부 아이다호, 서부 몬태나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곳에 단지 몇 천의 백인과 3만의 인디언이 살고 있었다. 이러한 넓은 지역 사이에 산악이 가로 놓여 있고 통신수단 등의 미비로 인하여 1850년대 까지는 크게 3지역으로 구분되어 발전하면서 서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한 지역은 Snake & Clearwater valley로 불리워지는 지역으로 Walla walla에서 Lewiston 까지 뻗어 있는 지역이고, 다른 한 지역은 Columbia 강 유역에 있는 Vancouver 였으며 나머지 한 지역은 Puget sound basin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Olympia, Steilacoom, Port Townsend, Seattle, Coupeville, 그리고 Whatcom 을 포함하였다.
초기에는 넓은 인디언 지역의 땅을 정착민에게 주는 관대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잘 늘어 나지 않았는데,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부의 대평원과 록키 산맥을 가로 지르는 힘든 여행을 하기를 원치 않았으며, 그렇다고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California, Idaho, Montana, 그리고 British Columbia 등지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그나마 있던 정착민도 빠져나가게 되었다.
(주: 문헌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지역 정부에서 심지어는 인디언들과 계약도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주기도 하였다고 실토한(?) 문헌도 있으며, 실제로 계약이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계약서라는 것은 서면으로 작성하는 것인데, 당시 인디언들에게는 말은 있어도 문자는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인디언의 땅을 사실상 빼앗은 과정을 합리화한 문헌도 있다. 어쨌든 1855년 까지 최초의 통치자였던 Stevens는 결국 대부분의 인디언으로부터 좁은 인디언 지역에 살게 하는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만들었다)
1855년부터 1859년까지는 산발적인 인디언과의 전쟁이 있게 되는데 이는 인디언들이 협정에 서명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고 백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1859년까지는 모든 인디언들이 전쟁에 패하게 되었고 미의회에서는 1859년 이러한 인디언과의 조약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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